질문 하나의 힘 (흰곰 실험, 거더, 딸의 편의점 질문)

토목 일을 처음 배우던 시절, 교량 현장에서 선임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교각이랑 교대는 우리가 했는데, 거더는 왜 다른 업체가 올려요?" 특수한 제작과 운반, 설치 장비가 필요해서 전문업체가 맡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었는데, 그날 이후 머릿속에 다른 질문이 하나 자리 잡았습니다. "나는 한 공종만 하다 끝날 건가, 토목 전체를 배워 볼 건가." 결국 그 질문 때문에 다니던 단종회사를 그만두고 종합건설회사로 옮겼고, 그 회사에서 올해 8월 퇴직할 때까지 일했습니다.

이 기억이 떠오른 건 최해직책추천 채널의 매일 아침 뇌에 이 질문 하나만 던지세요, 90일 뒤 현실이 바뀝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입니다. 영상은 "나는 부자다"라고 단언하는 대신 "왜 나는 부자가 된 거지?"라고 질문하면, 뇌가 그 답이 될 단서를 현실에서 골라내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웨그너 교수의 흰곰 실험(1987), 모루치와 매군이 1949년에 보고한 뇌의 망상활성계(RAS), 와이즈먼의 행운 실험을 차례로 근거로 들고, 이 내용을 담은 책 「죽어도 컨티뉴」를 소개합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제게 남은 건 정답이 아니라 질문 세 개였습니다. 오늘은 그 세 개에 제 경험으로 답해 보겠습니다.

질문 하나. 내가 던진 질문이 정말 길을 바꾼 적이 있었나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거더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돌아보면 회사를 옮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보다, "왜 우리는 거기까지만 하지?"라는 질문을 품고 지낸 몇 달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 질문을 품고 나니 현장에서 다른 공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측량, 토공, 관로, 포장까지 예전에는 남의 일이던 공정들이 "저건 어떻게 하는 거지?"라는 관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영상에서 빨간 차를 사면 길에 빨간 차만 보인다고 설명한 대목이 바로 이 경험이었습니다. 질문이 바뀌니 같은 현장에서 보이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뇌과학 용어는 몰랐지만 몸으로는 이미 겪은 일이었습니다.

돈 관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2021년에 만든 연금 계좌가 IRP인지 연금저축펀드인지를 저는 5년 넘게 정확히 몰랐습니다. 매달 돈은 넣으면서도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겁니다. 퇴직을 앞두고 "내 계좌는 정확히 뭐지?"라고 처음 물었고, 그 질문 하나로 통합연금포털에 들어가 연금저축펀드라는 것과 연금 개시 예정일, 적립금까지 한 번에 확인했습니다(연금저축펀드 정체 확인기). 질문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정보가 사실은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질문 둘. 아이는 왜 편의점에서 주식을 볼까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일 때 함께 주식 계좌를 만들었습니다. 그 뒤로 딸의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고르다가 "아빠, 불닭볶음면 만드는 회사도 주식이 있어?"라고 묻더니, 요즘은 용돈이 생기면 "이 돈도 투자해 볼까?"부터 묻습니다(초등학교 2학년 딸과 주식 계좌를 만든 이야기).

저는 딸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작은 계좌 하나가 생기자 아이 스스로 "이 회사는 어떻게 돈을 벌지?"라는 질문을 품게 됐고, 그 질문이 편의점 진열대를 다르게 보이게 만든 것입니다. 2020년에 처음 들어온 배당금은 애플 1.64달러였습니다. 몇 년 뒤 세 종목에서 21.9달러가 들어왔을 때 딸은 "더 사면 안 돼?"라고 물었습니다(딸 주식 계좌에 처음으로 배당금이 들어온 날). 영상에서 저승사자가 "작은 것부터 구해 보라"라고 한 말이 이런 뜻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1.64달러짜리 경험이 아이의 질문을 바꿨으니까요.

"이 돈을 어디에 쓸까"와 "이 돈을 어디에 맡길까"는 같은 용돈을 두고 던지는 다른 질문입니다. 앞의 질문은 소비로 끝나지만, 뒤의 질문은 배당과 재투자로 이어집니다. 어른인 저도 월급날마다 어떤 질문을 먼저 던졌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질문 셋. 불안하면 정말 신호를 못 볼까

영상에서 소개한 와이즈먼의 실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문 속 사진 수를 세라고 했더니, 스스로 운이 나쁘다는 사람들은 둘째 페이지에 크게 적힌 "그만 세세요, 사진은 43장입니다"라는 문구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고 합니다. 와이즈먼은 이 실험을 직접 소개한 텔레그래프 기고문(2003)에서, 운이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긴장해서 예상하지 못한 기회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장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단양 현장에서 보강토 옹벽을 30% 정도 시공했을 때, 도면에 그려진 집수정의 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 도면은 처음부터 계속 보던 도면이었습니다. 유공관과 집수정이 그려져 있으니 배수계획은 당연히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넘겼던 겁니다. 그러다 "이 물은 결국 어디로 가지?"라고 한 번 더 물었을 때 비로소 보였습니다. 신호는 처음부터 도면에 있었고, 달라진 건 제 질문과 마음 상태였습니다.

투자 계좌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 지수 ETF인 SPYM과 QQQM을 사면서 저는 이 상품이 환율 변동을 그대로 받는 환노출형인지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환율이 출렁인다는 뉴스를 보고 "내 ETF는 환율 영향을 그대로 맞고 있나?"라고 물었을 때 비로소 상품 정보를 다시 열어 봤습니다(환노출 환헤지). 따져 보면 처음 살 때부터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습니다. 도면 속 집수정처럼,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고개를 갸웃한 대목들

질문이 시선을 바꾼다는 큰 줄기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영상을 보면서 몇 군데에서는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 "90일 뒤 현실이 바뀝니다"라는 제목은 영상 본문에서 근거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제 경우 거더 질문이 이직으로 이어지기까지 몇 달이 걸렸고, 딸의 질문이 바뀌는 데는 몇 년이 걸렸습니다. 질문의 힘은 믿지만 기한을 정해 두면 오히려 조급해질 것 같습니다.
  • 책 속 팸과 케인의 이야기는 질문의 차이를 보여주는 비유로는 재미있지만, 실험이나 실제 사례는 아닙니다. 같은 영상 안에서 실제 연구와 책 속 이야기가 섞여 나오다 보니, 어디까지가 확인된 사실인지 구분하면서 들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 로젠탈의 피그말리온 실험(Rosenthal & Jacobson, 1968)은 유명한 연구지만, 이후 연구들을 정리한 Jussim & Harber(2005)의 리뷰에서는 교사의 기대 효과가 실제로 있긴 하지만 대체로 작고, 원래 실험처럼 지능지수까지 크게 바꾼다는 결과는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정리합니다. 기대가 결과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믿기만 하면 된다는 뜻까지는 아니라고 받아들였습니다.
  • 영상 마지막에 책이 제작자 본인의 책이라는 걸 밝힙니다. 솔직하게 밝힌 점은 좋았고, 다만 그만큼 책의 메시지에 맞는 사례 위주로 구성됐을 거라는 점은 감안하고 봤습니다.

결국 저는 이 영상을 "질문하면 이뤄진다"보다는 "질문하면 보이기 시작한다"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보이는 것과 이뤄지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직접 움직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투자에서는 질문의 방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종목은 왜 오를까?"만 계속 물으면 뇌는 오를 이유만 골라서 보여 줍니다. 그래서 저는 매수하기 전에 "이 판단이 틀린다면 이유는 뭘까?"라는 질문도 함께 적어 두려고 합니다. 영상이 말한 뇌의 필터를 한쪽으로만 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내일 아침 제가 던질 질문

재직 시절에는 매주 금요일 의정부에서 청주까지 2시간 넘게 운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곤 했습니다(매주 금요일 퇴근길 이야기). 퇴직한 지금은 그 2시간이 아침 책상 앞으로 옮겨 왔습니다. 영상을 본 뒤로 그 시간에 질문 하나를 적어 보기로 했습니다.

"왜 나는 퇴직하고 나서 더 잘 살게 됐지?"

퇴직 후 매일 아침 적는 질문 메모 - 왜 나는 퇴직하고 나서 더 잘 살게 됐지
퇴직 후 아침마다 적어 보는 질문

이 질문을 돈 쪽으로 좁히면 "월급 없이도 생활비가 채워지는 구조를 나는 어떻게 만들었지?"가 됩니다. 아직은 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그래도 이 질문을 품고 지내다 보면, 거더를 보며 토목 전체를 보게 됐던 그때처럼 연금 계좌와 투자 계좌 안에서도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거라고 기대해 봅니다. 영상 제목처럼 90일 뒤에 다시 이 질문을 꺼내 보고, 그때 무엇이 보였는지 이 블로그에 적어 두겠습니다.

이 글은 제 개인 경험과 의견을 정리한 것이며 특정 상품이나 종목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는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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